[더뉴스 더콕] 힘으로 유지되는 '하나의 중국' / YTN

2019-11-20 11

중국에는 크게 나누더라도 55개의 소수민족이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 가운데 규모가 큰 일부 소수민족에서는 강력한 분리 독립 요구가 오랜 기간 이어져 왔고, 민족 차별에 대한 반감으로 인한 대규모 시위도 벌어졌습니다.

그럴 때마다 중국은 군을 동원한 강력한 힘으로 이를 진압했습니다.

오늘 더콕에서는 힘으로 유지된 하나의 중국, 과거 사례를 돌아보겠습니다.

청나라가 무너진 뒤 독립국을 유지하다 1951년 중국에 병합된 티베트에서는 1959년 군사 반란이 일어났고 같은 해 3월 대규모 시위로 번졌지만 중국군에 의해 유혈 진압됐습니다.

티베트인들은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를 지키자고 수십만이 모였던 3월 10일을 반중국 봉기일로 기념하고 있습니다.

1989년에는 봉기 30주년을 맞아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후진타오 당시 티베트 자치구 당서기는 강경 진압을 이끌었고 이후 중앙으로 진출해 국가주석에까지 올랐습니다.

베이징 올림픽을 앞둔 2008년에도 대규모 독립 요구 시위가 일어났지만 역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며 무력으로 진압 당했습니다.

신장 위구르에서도 독립 요구가 강력히 분출됐습니다.

2009년 '위구르 청년이 한족에 피살됐다'는 소문은 민족 감정을 자극했고 진상규명 요구에서 촉발된 시위가 차별철폐와 독립 요구로 이어졌습니다.

중국 군과 경찰의 투입으로 200명에 가까운 사망자와 천 여명에 이르는 부상자가 발생한 시위는 사흘 만에 마무리됐습니다.

네이멍 자치구에서는 2011년 몽골족의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한족이 운전하던 트럭에 치어 숨진 몽골족 유목민을 향해 트럭 운전기사가 "몽골족의 생명은 몇푼 안된다"고 한 말이 발단이 됐습니다.

민족 차별에 대한 불만이 분출되며 대규모 반중 시위가 발생하자 중국 정부는 역시 군을 투입했습니다.

홍콩에서는 2014년 9월,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두달 넘게 이어졌습니다.

최루탄을 막는 용도로 등장한 우산이 저항의 상징으로 부각됐고, 당시 시위는 우산혁명으로 불립니다.

그리고 현재 6개월째 진행되고 있는 홍콩 시위는 이른바 송환법을 계기로 촉발됐지만 우산혁명 때 이루지 못한 행정장관 직전제 등의 민주화 요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홍콩에서는 5년 전에도, 현재도 중국군이 투입되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소수민족 사례와 성격이 달라 군...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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